삼국시대는 부족국가로 출발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원시적 국가체제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고대국가의 틀을 확립한 시기 입니다. 삼국은 각각 성장과정에서 받아들이기 시작한 철기문화를 소화하여 철제 농기구를 일반화시키고 정치제도를 정비하였습니다. 또한 불교가 전래 확산되어 유교와 더불어 후대 정신문화의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대륙문화를 흡수, 재창조하였습니다. 한편,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를 통합한 통일신라는 대동강에서 원산만 이남지역을 차지하고 하나의 민족국가를 이루게 됩니다. 민족문화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도성의 면모를 갖추면서 서남아시아를 비롯하여 중국의 당, 일본 등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국제도시로 성장하였습니다.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이성산에 있는 포곡식(包谷式)의 석축산성입니다. 이 산성은 한강에 접하고 있는 여러 성들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인 중요성과 성내에서 발견되는 삼국시대 유물 등으로 인해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발굴조사의 성과를 살펴보면 장방형 건물지 4기, 9각 건물지 2기, 8각 건물지 1기 등의 건물지와 2곳의 저수지, 신앙유적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목간(木簡), 자(尺), 목제인물상, 철제농기구, 무기, 벼루를 비롯한 토제품, 토기와 기와 등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문서나 편지 등의 글을 일정한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에 새겨 넣은 것이다. 한국에서 출토된 목간의 사용 시기는 늦어도 6세기 중엽에서 8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주로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또는 널리 쓰이기 이전 그에 대신하는 용도로 널리 쓰였다. 목간은 비록 단편적이긴 하지만 당대의 정치, 사회상이 기록되어 있긴 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말은 예로부터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천마는 하늘을 나는 말로써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인물을 지상으로 데려오는 역할, 즉 왕의 출현을 상징합니다. 다른 한편으론 지상에서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로 데려다 주기도 합니다. 이렇듯 말은 신성한 동물로 여겨져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성산성에서는 흙으로 만든 말과 철로 만든 말이 출토되었는데 안전한 항해 및 수복강녕을 기원했을 것입니다.
이 유물이 처음 저수지에서 출토하였을 때는 이 유물의 성격을 알지 못하였고, 나중에 문헌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구려에서 사용하던 장고의 일종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쪽 일부가 파손되기는 하였으나 전체적인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겉 표면은 칼로 다듬어서 마무리하였으며, 내부는 끌 같은 것으로 파고 칼로 다시 다듬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퇴적층에 묻히는 과정에서 흙과 자갈 등으로 인해 원통형(圓筒形) 양측 면이 눌리게 되어 복원된 두 지름의 규격에 다소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