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통일신라시대에 토기(土器)에서 자기(磁器)로 이행되는 기반을 확립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청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자기가 만들어지며 번성하였습니다. 특히 상감기법을 자기에 적용하여 발전시킨 상감청자는 고려만의 독창적인 미감을 구축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자기는 크게 분청사기와 백자로 나눌 수 있는데, 분청사기는 고려 말 상감청자의 전통을 바탕으로 소박하며 자연스러운 멋이, 백자는 성리학적 이념을 토대로 실리와 더불어 엄정한 기품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고려 순청자부터 조선 청화백자에 이르기까지 도자의 여정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고려시대의 청자병으로, 구연부는 나팔과 같이 벌어지고 목은 가늘고 길며, 매끄러운 경사를 이루면서 선이 팽창해 몸체하부에 이르러서는 풍만해진다. 병의 전면에 할죽(割竹)을 세워 만든 것처럼 세로로 양각(陽刻)을 했으며 유약은 약간의 빙렬(氷裂)이 있는 담청색 계통으로 그윽한 맛을 풍기며 낮은 굽의 안쪽에는 모래받침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의 엷은 회청색의 무문(無紋) 소형 주전자로 뚜껑에서부터 8줄의 골을 파서 참외모양을 나타내었다. 주구는 단면 6각형의 모양이고 손잡이에는 2줄의 홈이 파인 형태이다. 전체적으로 빙렬(氷裂)이 거의 없는 상태이며, 굽의 안쪽까지 시유(施釉)가 되었고 내화토(耐火土) 자국이 옅게 남아 있다.
청자상감국화무늬병으로, 나팔모양의 구연(口緣)과 긴 목, 풍만한 몸체를 한 병이다. 몸체는 골을 파서 8면으로 나누고 각 면에 흑백상감한 국화를 연결시켰으며 저부(底部)에 연판문(蓮瓣文)을 상감하였다.
고려시대의 청자주전자로, 위·아래가 둥그런 조롱박 모양이다. 유약은 회청색계의 비색(翡色)이며 광택이 은은하다. 몸통에는 좌우에 보주문대(寶珠紋帶)로 둘려진 원내에 용문(龍紋)이, 그 밖에는 국화문(菊花文)이 새겨져있다. 그 아래 굽 위쪽까지는 다시 연판문대(蓮瓣文帶)와 연주문대(蓮珠文帶)가 곁들여 둘려있다.
조선시대의 분청사기매병으로, 외반(外反)한 구연(口緣)과 아담한 몸체 선을 하고 있다. 문양은 모두 흑백상감으로 표현했다. 어깨에는 연판문대(蓮瓣文帶)와 여의문 띠가 둘려 있고 몸통의 상부에는 유문(柳紋)이 4개, 죽문(竹紋)이 4개 그리고 매문(梅紋) 6개가 교대로 새겨져 있다. 몸통아래는 다시 연판문대(蓮瓣文帶)가 둘려있다. 연한 회록색의 유약이 고루 입혀졌으나 몸체아래는 약간 산화되었다.
조선시대의 분청사기병으로, 어깨에는 특이하게 간략화 된 연판문(蓮瓣文)을, 몸체에는 음각(陰刻), 박지 기법으로 모란문(牡丹文)을 큼직하게 나타내었다. 백토(白土)분장은 저부(底部)를 제외하고 귀얄로 전면(全面)에 고르게 시유(施釉)하였으며 유약은 엷은 회청색으로 광택이 있다.
조선시대의 분청사기항아리로, 전형적인 철화(鐵畵) 항아리이며 비교적 소형이다. 상반부의 백토(白土) 위 두 곳에 초문(草文)을 힘차게 그렸으며 내면과 외면아래는 연한 녹색을 띠고 있다. 유약은 광택이 나고 굽에는 모래받침이 붙어있다.
조선시대의 청화백자병으로, 목이 길고 풍만한 몸체를 가졌다. 몸체에 매화문과 죽문을 청화로 그려 넣었고, 굽에는 한 줄의 가로선을 둘렀다. 약간 청색을 띠는 투명한 백자유(白瓷釉)가 전면에 시유(施釉)되었는데, 광택도 좋고 빙렬(氷裂)도 거의 없다.
조선시대의 철화백자병이다. 몸체에는 대나무를 큼직하게 그렸을 뿐 다른 문양은 없어 소박하지만 정갈한 느낌을 준다. 철성분이 많이 섞여 전체적으로 갈색조를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