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회화는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발달하였습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는 주로 종교적이고 실용적인 목적의 그림이 제작되었고, 고려시대에 이르러 감상을 주목적으로 하는 회화가 유행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더욱 다양한 소재의 회화가 발전하였습니다. 중국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이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조선전기에는 일본 수묵화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선후기에는 조선의 산수를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화와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풍속화가 유행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화풍이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이 그림은 깊이가 느껴지는 산수를 배경으로 모심기, 밭갈이, 고기잡이, 방아 찧기, 길쌈하기 등 시골 마을의 여러 가지 소박한 풍경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자는 자고(子固) 호는 방운(峀雲) 또는 가산(茄山)이라 하며 조선 숙종조의 사람이다. 이 그림은 조선조의 묵죽도를 대표할 만한 대작으로 화면 오른쪽 아래 주변에는 바위를 그렸고 그 뒤로 농묵과 담묵을 이용하여 양죽, 음죽과 죽순을 나타내었다. 상단좌측에는 '기원신록(淇園新綠)'이라는 묵서가 있다.
김식은 우의정을 지낸 김안로(金安老)가 증조부이고 아버지는 김봉선(金奉先)이다. 이 그림은 중국 강남지방의 물소와 나무를 배경으로 그렸으며 선염(渲染)의 음영처리로 한국적인 분위기가 표현되었다. 동충 원충회의 배관이 있다.
17세기 이후에 성행한 고목, 묵매도의 구도를 하고 있으며 수묵의 농담으로 빠른 손놀림에 의해 그려졌다. 오랜 풍상을 겪은 고목과 생기 있는 가지에서 강직한 선비의 기개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자는 이숙(餌叔) 호는 현재(玄齋)이며, 겸재 정선과 더불어 18세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이다. 이 그림은 바위 위에 잡초와 함께 국화를 수묵으로 표현하였는데 작가의 절개가 힘 있는 필치 속에 잘 드러나 보이는 작품이다. 화폭의 좌측에 '玄齋'라는 낙관이 찍혀있다.
이 그림은 여름의 경치를 표현한 것으로 전경에는 한가로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원경에는 계산(溪山)사이의 누각을 그려 넣었다. 맑고 산뜩한 담채를 사용해 한가로운 여름날의 풍경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장승업의 출신은 미상이지만 수표교 근처에 있는 이동지(李同知)라는 사람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19세기 한국화를 대표할 만큼 현대적인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작가이다. 이 그림은 거칠고 날렵한 수묵필치로 그린 현대적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우측상단에는 '水滿池塘雙鴨虛遊'라는 석운 권동수(石雲 權東壽)의 화제가 있고 우측하단에는 '竹賓閔泳翊'의 소장인이 찍혀있다.
호는 석지(石芝)이며 철종, 고종 때의 화원이었다. 산수, 인물, 영모를 잘 그렸는데 특히 초상화에 생기 있는 대작이 많다. 이 그림은 어느 대가집 부인을 그린 전신 초상화로서 의자에 앉은 모습에 배경은 병풍산수화로 처리하였다. 그림에 나타난 부인의 미모와 표정에서 초상화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신기가 드러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