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쩌면 이미 ‘여유’라는 말을 잊고 사는 건 아닐까. 많은 학생들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 구석구석도 돌아보지 못한 채 그저 수업시간에 맞춰 부리나케 뛰어다닐 뿐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서울캠퍼스 애지문을 나와 제 2공학관으로 달려갈 무렵, 늘 그 자리에 스쳐 흘러가는 풍경일 뿐이었던 박물관을 처음으로 들어가 본 감회가 매우 새로웠다.
박물관 큐레이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걸까. 기자는 TV에서 나오듯 관람객들을 앞에서 작품설명을 해 주고 뿌듯해하는 그런 모습을 상상해봤다. 하지만 박물관 큐레이터인 이권호 씨의 설명은 전혀 다르다. “대학에서 운영할 수 있는 인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문성 있게 한 가지 일만 하기보다는 박물관에서 하는 모든 일들을 책임져야 하죠”라며 이것저것 꺼내놓는 얘기들은 여유와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씨의 일과는 전시실을 둘러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물의 보존이기 때문에 전등 하나, 습도, 온도에도 소홀할 수 없다. 유리벽 안에 있는 습도·온도계를 꼼꼼히 확인하고 꺼진 조명은 없는지, 혹 없어진 물건은 없는지, 시설물 관리는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유물보존은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유리벽 안의 전구하나 바꾸는 것도 큐레이터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또 이 씨는 “오래된 그림이나, 목재로 된 유물의 경우는 특히 자외선과 습기에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전시물 사진 촬영 시는 반드시 플래시를 꺼 줄 것을 당부했다.
박물관의 재개관과 함께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수많은 유물들을 분류하는 작업 역시 예삿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