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 이야기

한양대학교박물관을 소개합니다.
교과서 더하기(+)_첫번째 나제동맹의 파탄과 신라의 한강 점령
한양대박물관 조회 812 댓글 0 20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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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양대학교박물관 교과서 더하기(+)’입니다.

 

오늘은 나제동맹의 파탄과 신라의 한강 점령과 연관한 유물과 유적을 살펴보려 합니다.

우선! 이와 관련된 2015 개정 교육과정 내 한국사역사의 성취기준을 먼저 확인해볼게요.

 

 

 

 

[10한사02-02] 삼국 간의 경쟁과 가야 세력의 쇠퇴 및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 과정을 살펴보고, 삼국 통일의 역사적 의미를 토론한다.

     

[902-03] 삼국의 경쟁 과정을 각 시기별 영역 변화를 통해 살펴보고, 한강 유역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추론한다.

 

 

 

, 그렇다면 함께 출발할까요?

이번 시간을 통해 여러분들은 역사 자료를 분석하고 해석 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을 거에요!

 

오늘의 유물을 소개합니다!

 

토제마.jpg   토제마_2.jpg

 

 

어떤 용도로 사용된 유물일까요? 한번 상상해보세요.

해당 유물들은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이성산성에서 발견된 흙으로 구운 말이랍니다.

한양대학교박물관에서는 1986년부터 올해 2020년까지 14차에 걸쳐 하남 이성산성 발굴을 진행하고 있어요.

 

 

상상해 봤나요?

어떤 용도의 유물일지는 잠시 후에 설명해줄게요!

위 유물과 관련된 교과서 속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지금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5세기 고구려 장수왕이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남진정책을 시작하면서 당시 백제와 신라는 위협을 느꼈어요. 따라서 433년 신라의 눌지왕과 백제의 비유왕은 나제동맹(*신라-백제 동맹)을 맺고 화합하여 고구려에 대응하기로 약속해요. 그러다 장수왕이 백제를 침략하여 개로왕을 죽이고, 한강유역을 차지하면서 신라까지 위협하기 시작했어요.

이에 신라와 백제는 이전의 나제동맹을 더욱 굳건히하기 위해 493년 신라의 소지마립간과 백제의 동성왕은 결혼동맹을 맺었답니다. 나제동맹에 결혼동맹까지.... 신라와 백제의 사이가 아주 돈독했겠죠? (여러분들이 친구와 서로 친하게 지내기로 서로 2번의 굳은 약속을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친구를 절대 배신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저절로 들거에요..)

 

이제 신라, 백제 연합군이 드디어 고구려에 대응하는 액션을 취하기 시작합니다!! 그게 바로 551년 신라 진흥왕과 백제 성왕의 나제 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하기 시작 한 거에요. 두 나라의 협공에 밀린 고구려는 결국 한강유역을 내주었어요. 그래서 두 왕은 한강 상류는 진흥왕이 통치하고, 한강 하류는 성왕이 통치하기로 서로 약속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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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흥왕은 한강 상류를 정복한 것에 만족하지 못 했어요. 그 당시 한강은 한반도의 중심이고, 물자를 확보하기 유리하며 중국과의 직접 교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요충지였기 때문이에요.

 

이에 결국 진흥왕은 성왕이 차지한 한강 하류까지도 공격하여 한강 상,하류 지역을 차지하고 553년 한강유역에 새로운 땅이라는 의미의 신주(*신주(新州)는 일종의 지방행정구역이에요. 신주는 지금의 경기도일원과 충청도, 강원도의 일부지역을 포괄하는 넓은 지역이었고, 그 지역을 통치하는 장소가 오늘 소개할 하남시의 이성산성으로 추정된답니다.)를 설치해요. 그 결과 나제동맹은 깨지고, 신라가 관산성을 공격하면서 성왕은 대가야와 연합하여 대응했지만 결국은 관산성에서 사망하게 되요. 이로써 신라는 중국 및 왜와의 교통로를 확보하고, 삼국 간의 항쟁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었어요.

 

, 여기까지 잘 따라왔나요?

이렇듯 고대 삼국시대가 정복전쟁의 시대임을 오늘의 첫 번째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확실히 느껴지지 않나요? 그렇다면 이러한 이야기를 가진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오늘의 유물인 ‘흙으로 구운 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고대 사람들이 생각했던 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면 좋을 거에요.

 

 

토제마.jpg  토제마_2.jpg  

흙으로 구운 말(土馬), 신라, 길이 5.6cm, 하남 이성산성

 

 

그 당시 말은 영험한 존재로 의리와 충성 그리고 남성을 상징하면서 영혼을 인도하는 존재로 이해되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고대의 제례의식에서 진짜 말을 대신해 귀중한 제물로 사용되었어요. 그래서 주로 제례의식이 이루어졌던 유적에서는 흙이나 금속으로 제작된 말이 자주 발견된답니다. ‘흙으로 구운 말도 이러한 맥락에서 아마도 그 당시 신라인에 의해 제작 되었을 거에요.

 

이성산성의 정상부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인 9각 건물과 사직단으로 추정되는 8각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주변에는 건물이 무너지고 난 후 주초석 위에 크기 100~150cm의 큰 돌을 세워 만든 신앙유적이 4곳 남아있어요. 그리고 여기서 모두 44개의 흙이나 철로 만든 말이 부러뜨려진 채 발견되었는데, 이로서 이성산성의 정상부에는 사람이나 동물에 대한 장례의식 또는 국가적 차원의 신앙적인 또는 기념비적인 의례행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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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남 이성산성(사적 제 422) 전경 

 

 

 

오늘 한양대학교박물관 교과서 더하기(+)에서 다룬 이야기는 나제동맹의 파탄과 신라의 한강 점령이었어요.

신라 진흥왕이 백제 성왕을 배신하고 한강유역을 차지하여, 6세기 신라 전성기로 이어졌다는 교과서 속 내용을 좀 더 확대해서 살펴봤어요.

 

이로써 새롭게 한강유역에 터전을 잡게 된 신라인들이 지방행정구역인 신주를 설치하고, 또 이성산성을 쌓았지요. 그러면서 하늘의 신(天神)에게 제사도 지내고, 음악도 즐기고, 밥도 해먹고 하는 과정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이 현대의 우리에게 발견되어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거랍니다.

 

오늘 살펴본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유물은 한양대학교박물관 5층 고고역사실에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어요!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요!

 

 

 

 

 

더 공부하고 싶다면?  보충자료 일러스트.jpg

 

강종훈, 송호정, 윤선태, 임기환,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1 : 원시시대에서 남북국시대까지, 웅진지식하우스, 2011.

 

 

 

 

 

[참고 문헌]

중학교 역사(지학사 09), 고등학교 한국사(지학사 09, 비상 15)

한양대학교박물관, 이성산성 발굴 20주년 기념특별전 도록, 2006.